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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는 책과 사라지는 책,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의 조건

서점 한 켠에서 발견한 시간의 비밀

먼지 쌓인 책장 앞에서 생각한 것들

어제 동네 헌책방을 둘러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책장 맨 위쪽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놓여있던 소설책 한 권이 눈에 띄었는데, 그 옆에는 반짝반짝 새 책처럼 깨끗한 고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책이었는데 왜 이렇게 다른 운명을 걸었을까? 손님들이 자주 찾아 읽어서 닳고 닳은 책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먼지만 쌓인 책. 이 차이가 대체 뭘까?

책방 주인에게 물어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떤 책은 몇 번을 팔아도 다시 들어와요. 누군가 읽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권하고, 그렇게 계속 순환하는 거죠. 반대로 어떤 책은 한 번 들어오면 몇 년째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책에도 생명력이 있구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책들의 이야기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이 떠올랐다. 표지가 해져서 테이프로 붙여놓은 흔적이 여러 곳 있었고, 페이지 모서리는 누렇게 변해있었다. 하지만 그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책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소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낡아갔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이다.

반면 집에 있던 두꺼운 백과사전들은 어떨까? 어머니가 비싼 돈 주고 사주셨지만,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점점 찾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책장 한 켠에서 장식품 역할만 하고 있다. 한때는 지식의 보고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요즘 전자책 플랫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리디북스나 밀리의서재 같은 곳에서 인기 순위를 보면, 어떤 책들은 몇 년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어떤 책들은 출간 직후 잠깐 주목받다가 금세 묻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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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걸러내는 진짜 이야기들

그렇다면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는 책들의 특징은 뭘까? 최근에 읽은 마케팅 관련 도서에서 흥미로운 통계를 봤다. 출간 후 5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는 책들을 분석해보니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다룬다는 것, 둘째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몇 번씩 다시 읽는 책들도 그랬다. 처음 읽을 때와 몇 년 후 읽을 때 느낌이 달라지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었다. 반면 한 번 읽고 나서 “아, 이제 다 봤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은 대부분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정보만 나열되어 있거나, 특정 시점의 트렌드만 다룬 책들이 그랬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런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일시적으로 화제가 된 책들과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들이 확연히 구분된다. 후자가 바로 시간의 검증을 받고 있는 책들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나는 더 깊이 파고들어보고 싶어졌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책들의 공통점

첫 페이지부터 다른 책들의 비밀

며칠 전 카페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 대학생이 읽고 있던 책을 힐끔 봤다. 『데미안』이었는데, 그 친구가 첫 장을 넘기면서 “와…” 하고 탄성을 내뱉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가 던지는 첫 문장부터가 뭔가 달랐던 기억이 난다.

살아남는 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는 힘이다. 『1984』의 “4월의 밝고 차가운 날이었다”라는 문장이나, 『변신』의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같은 시작들 말이다. 이런 문장들은 왜 수십 년이 지나도록 우리 기억에 남아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 책들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금세 잊혀지는 책들은 대부분 설명부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하면서 친절하게 배경부터 늘어놓는 식으로.

감정의 온도가 살아있는 문장들

지난주에 북클럽 모임에서 흥미로운 토론이 있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두 권의 책 중에서 왜 하나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다른 하나는 조용히 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론은 ‘감정의 온도’ 차이였다.

기억에 남는 책들은 작가의 체온이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면 그 특유의 쓸쓸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전해져 온다. 반면 기계적으로 쓰인 책들은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독자는 생각보다 예민해서, 작가가 진심으로 쓴 글인지 아닌지를 금세 알아챈다.

요즘 AI가 글을 쓰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손으로 쓴 편지를 더 소중히 여기는 이유와 비슷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어설퍼도 진심이 담긴 글이 더 오래 기억된다. 굿리드나 왓챠피디아 같은 플랫폼에서도 평점이 높은 책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더라.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질문들

얼마 전에 조카가 『어린왕자』를 읽고 있는 걸 봤다. 나도 어릴 때 읽었고, 아버지도 젊은 시절 읽으셨다고 하니 3대가 같은 책을 읽은 셈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각자 다른 부분에서 감동받았다는 거다.

어린 시절엔 장미꽃과 여우 이야기가 좋았고, 지금은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문장이 더 와 닿는다. 조카는 또 다른 부분에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었다. 이게 바로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남는 책들의 특징이다.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특정 시대의 유행이나 트렌드에만 기댄 책들은 그 시대가 지나면 함께 사라진다. 물론 그런 책들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오래 기억되려면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을 다뤄야 한다. 사랑, 죽음, 성장, 관계… 이런 주제들은 100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 테니까.

결국 책이 살아남는 건 독자와의 대화 때문인 것 같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이 더 오래간다.

 

시간을 견디는 이야기들의 특별한 조건

세월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들

얼마 전 친구가 “왜 어떤 책은 수백 년이 지나도 읽히는데, 어떤 책은 몇 년 만에 잊혀질까?”라고 물어봤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좋은 책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대답했는데,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답이 아니었다. 좋은 책이라는 건 너무 막연하지 않나.

『돈키호테』를 다시 펼쳐보면서 깨달았다. 이 책이 40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히 문학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모순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는 돈키호테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다를 게 뭐가 있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SNS 속 완벽한 삶을 꿈꾸는 우리랑 말이다.

반면에 작년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어떤 자기계발서는 벌써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 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의 트렌드에만 맞춰져 있었던 거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트렌드가 바뀌니까 자연스럽게 잊혀진 거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

지난주에 중학생 조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있더라. “이게 뭐가 그렇게 유명한 거야? 그냥 사랑 이야기잖아”라고 투덜거리길래, 나도 다시 한번 읽어봤다. 아, 이게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구나. 가족 간의 갈등, 세대 차이, 사회적 편견…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다 들어있었다.

셰익스피어가 대단한 건 400년 전 사람들의 감정을 지금 우리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게 썼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는 답답함, 어른들의 고집스러운 편견에 대한 분노… 이런 감정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으니까.

요즘 웹툰이나 웹소설 중에도 이런 보편적 감정을 잘 다룬 작품들이 있다.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을 건드리는 이야기들 말이다. 이런 작품들은 분명히 오래 기억될 거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바뀌어도 남는 본질적 가치

요새 전자책이 대세라고 하지만, 정작 오래 살아남는 책들을 보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형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1984』나 『멋진 신세계』 같은 책들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웰의 『1984』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빅브라더의 감시사회가 지금의 디지털 감시와 얼마나 비슷한가? 70년 전에 쓴 소설이 현재를 이렇게 정확히 예측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 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치가 드러나는 것 같다.

반대로 당시에는 혁신적이라고 여겨졌던 기술 관련 책들은 금방 구식이 되어버렸다. 10년 전 스마트폰 활용법을 다룬 책들을 지금 읽으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시간을 견디는 책들의 비밀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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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될 책과 사라질 책, 그 갈림길에서

내가 만난 책들의 운명

지난주 집 정리를 하다가 10년 전에 샀던 책들을 발견했다. 그때는 분명 베스트셀러였던 자기계발서가 몇 권 있었는데, 지금 펼쳐보니 왠지 낡아 보였다. 내용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대가 지나간 느낌이랄까? 반면 같은 상자에서 나온 『어린왕자』는 여전히 반짝반짝했다. 종이는 누렇게 변했지만 이야기는 오히려 더 깊게 와 닿았다.

이상하지 않나? 똑같은 시간이 흘렀는데 어떤 책은 더 빛이 나고, 어떤 책은 색이 바래 보인다. 요즘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이 책은 10년 후에도 읽힐까?” 하고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담은 이야기들

최근에 온라인 서점에서 고전문학 코너를 훑어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수백 년을 견딘 책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더라. 사랑, 배신, 성장, 죽음… 이런 보편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기술이나 유행은 변해도 인간의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까.

며칠 전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어봤는데, 200년 전 이야기인데도 연애할 때의 그 미묘한 감정들이 지금과 똑같더라. 첫인상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오해하고, 또 그 오해가 풀리면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 카톡으로 연애하는 지금도 본질은 같지 않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특정 시대의 트렌드만 쫓아간 책들은 그 시대가 지나면 함께 사라지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책들도 그 순간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겠지만.

독자와 함께 자라는 책들의 비밀

요즘 북클럽 활동을 하면서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정말 좋은 책들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는 거다. 20대에 읽었을 때와 30대에 읽었을 때, 또 40대에 읽었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마치 책이 나와 함께 성장하는 것 같달까?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런 책 중 하나다. 고등학생 때는 홀든의 반항이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 읽어보니 그 아이의 외로움과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온다. 같은 문장인데 내가 달라지니까 책도 다르게 읽히는 거지.

생각해보니 이런 책들은 독자 개개인의 인생과 함께 호흡한다. 그래서 세대를 넘어서도 계속 읽히는 게 아닐까? 각자의 삶의 단계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건네주니까 말이다.

 

결국 기록되는 책과 사라지는 책의 차이는 시간을 뛰어넘는 공감대에 있는 것 같다. 기술은 발전하고 세상은 변해도,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건드리는 이야기들은 계속 살아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책장 앞에서 묻는다. “이 책은 10년 후의 나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독서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