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걸어온 시간들, 그리고 깨달음
우연히 발견한 낡은 서점에서의 깨달음
지난 가을, 골목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헌책방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표지는 너무 낡아서 제목조차 희미했지만, 그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필기가 가득한 여백들, 접힌 모서리들이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함께했던 동반자였다는 것을.
그날 밤, 그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기록된 책들을 통해 전해진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사라져버린 책들이 만들어낸 전설과 신화들이 아닐까? 도서관의 정리된 서가에 꽂힌 책들이 공식적인 역사를 만든다면, 누군가의 서랍 깊숙이 숨겨진 일기장이나 편지들이 진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 아닐까.
기록과 망각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소설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선생님이 왜 그 책을 추천하셨는지는 지금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분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라진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절판도서를 검색해보면,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책들이 이제는 찾기 어려운 보물이 되어있다. 이런 책들이야말로 진짜 전설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간절해지고, 그 간절함이 책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요즘 전자책이 대세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한다. 전자책은 편리하지만 뭔가 아쉽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종이의 질감, 심지어 책 특유의 냄새까지… 이런 것들이 독서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특별한 책들의 이야기
몇 년 전, 친구가 이사하면서 책들을 정리할 때 도와준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이 책은 절대 버릴 수 없어”라며 꼭 껴안았던 낡은 소설책이 기억난다. 겉표지는 너덜너덜했지만, 친구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이었다. 그런 책들이 진짜 가치 있는 책이 아닐까?
교보문고에서 신간 코너를 둘러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매일 출간되는데, 과연 몇 권이나 오래 기억될까?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해서 모두 역사에 남는 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출간되었다가 사라진 책들 중에서 나중에 재발견되어 클래식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나.
게 책과 함께 살아가면서 느낀 건, 책의 진짜 힘은 기록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의 절묘한 균형에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책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서
도서관 지하 창고에서 만난 운명적인 순간
그 헌책방에서의 깨달음 이후, 나는 마치 보물사냥꾼이 된 것처럼 사라져가는 책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시립도서관에서 자료 정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때 지하 창고에서 정말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인 상자들 사이에서 1970년대 출간된 시집들과 절판된 소설들이 마치 시간을 잃어버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한 작가의 미발표 원고였다. 누렇게 바랜 원고지에 손글씨로 빼곡히 적힌 글들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건 단순한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혼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 작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마지막 작품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창고 한 켠에서 잠들어 있었던 거다.
그때 깨달았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 또 어디에 숨어있을까?
전설이 된 책들의 미스터리한 이야기
사라진 책들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전설의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친구가 운영하는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에서 만난 한 회원이 들려준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희귀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책은 일제강점기에 금서로 지정되어 대부분 소각됐다고 했다.
“그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하더라고요.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왜 권력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알겠다고.”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전율을 느꼈다. 책 한 권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사라져야 했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사라진 책일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슬롯생강 자료실에 ‘금서 목록’이나 ‘사라진 명작’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글들이 나온다.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극소수인데도 불구하고 그 책들은 전설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이게 바로 ‘사라지는 책이 전설을 만든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 더 쉽게 사라지는 기록들
요즘 들어 더욱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는 건,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내가 즐겨 읽던 개인 블로그가 갑자기 폐쇄됐다. 그 블로거가 10년 넘게 써온 글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진 거다. 종이책이었다면 적어도 몇 권은 어딘가에 남아있었을 텐데 말이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출판사와 플랫폼 간의 계약이 끝나면 내가 구매했던 책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물론 편리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영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정말 소중한 글들은 따로 백업해두는 습관을 기르게 됐다. 워드프레스로 개인 아카이브를 만들어서 인상 깊게 읽은 글들을 정리해두기도 하고, 가끔은 프린터로 출력해서 파일에 보관하기도 한다. 좀 구식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방법이 오히려 더 확실한 것 같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거다. 클라우드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그리고 정말 소중한 건 결국 물리적인 형태로 남겨둬야 한다는 걸 말이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책들을 바라보며, 나는 더욱 간절히 느끼게 됐다 –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전설이 된 책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책이 만들어낸 신화 같은 순간들
사라진 책들을 찾아다니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정작 그 책들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는 더욱 선명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동네 카페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 대화를 엿들었는데, 두 할머니가 “그 책 기억나니? 표지가 파란색이었던…”하며 제목도 작가도 기억나지 않는 책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책이 남긴 감동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구나.
며칠 후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가 발견한 한 리뷰가 내 마음을 울렸다. “이 책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서 너무 아쉽다. 20년 전 읽었던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은데…” 댓글들을 보니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같은 보물을 찾고 있는 동료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속 책들의 진실
그러던 중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에서 “환상의 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는데, 한 회원이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책 이야기를 올린 거였다. 일제강점기에 몰래 돌려읽었다는 한글 소설책인데, 누구도 그 책의 정확한 제목이나 작가를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직접 그분께 메시지를 보내봤다. 그리고 약속을 잡아 만나뵙게 되었는데, 그분의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들려주신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하지만 해방 후에는 어디서도 그 책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어.” 이런 이야기들이 바로 전설이 되는 과정이구나 싶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계속 생각해봤다. 과연 그 책이 실존했을까? 아니면 여러 사람의 기억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환상일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책이 실제로 존재했든 아니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분명히 살아있었으니까.
디지털 시대에도 계속되는 책의 전설들
요즘에는 전자책이나 PDF로 모든 걸 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는 책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개인 블로그에서 연재되던 소설이 갑자기 삭제되거나, 작은 출판사에서 전자책으로만 출간했던 작품이 서비스 종료와 함께 영원히 사라지는 경우들 말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슬롯생강 자료실의 온라인 소설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연재되던 작품인데, 정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작가가 모든 글을 삭제하고 사라져버린 거다. 지금도 그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 독자들이 기억을 더듬어 줄거리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책이 사라지는 건 막을 수 없구나.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는 더 쉽게, 더 완전하게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게 지워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을 전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나는 점점 더 책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 가는 것 같다.
책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 그리고 우리가 써내려가야 할 이야기
디지털 시대에 다시 발견하는 종이책의 가치
요즘 들어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실제로 나 역시 킨들이나 밀리의서재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기도 하고, 출퇴근길에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종이책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온라인에서 읽었던 소설이 너무 좋아서 종이책으로 다시 주문했는데, 책이 도착했을 때의 그 기분이란… 새 책 특유의 냄새부터 시작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손끝에 전해지는 종이의 질감까지. 이런 건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정말 좋아했던 책들은 대부분 종이책으로 읽었던 것들이다. 책갈피를 끼워두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그 시간들. 나중에 다시 펼쳐봤을 때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마법 같은 경험 말이다.

작은 서점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이야기들
최근에 동네에 작은 독립서점이 하나 생겼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창문에 붙어있던 손글씨 pop가 눈에 띄었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책이 여기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더라. 뭔가 호기심이 생겨서 들어가 봤는데,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사장님이 직접 읽어보고 추천하는 책들만 진열해놓은 곳이라고 하더라.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책보다는 정말 좋은데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날 사장님 추천으로 한 권 사서 읽어봤는데, 정말 내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다.
그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 서점에 들르게 됐다.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사장님과 나누는 책 얘기가 더 좋았다. 어떤 책이 좋았는지, 왜 그 책을 추천하게 됐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런 게 진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이런 작은 서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임대료 부담도 크고, 온라인 서점과의 경쟁도 쉽지 않다고 하더라. 정말 아쉬운 일이다. 이런 곳들이야말로 책의 진짜 가치를 알려주는 소중한 공간들인데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책의 미래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든 생각이 있다. 책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때로는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꿔주기도 한다. 그래서 ‘기록되는 책이 역사를 바꾸고, 사라지는 책이 전설을 만든다’는 말이 더욱 와닿는 것 같다.
요즘 나는 책을 읽고 나면 꼭 누군가와 그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추천하기도 하고, 온라인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도 한다.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에 서평을 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인스타그램에 책 사진과 함께 AI 기반 개인 맞춤형 도서 추천 시스템 운영 사례를 적기도 한다.
처음엔 그냥 기록용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주더라. 댓글로 책 추천을 요청하기도 하고, 같이 읽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작은 소통들이 모여서 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 책의 가치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라는 것. 좋은 책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사라져가는 책들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이야기해주고.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책의 역사를 만들고, 전설을 이어가는 거 아닐까?
책과 함께한 이 여정을 돌아보니, 결국 가장 소중한 건 책 그 자체가 아니라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