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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이기는 책과 잊혀지는 책, 그 경계에 서 있는 독서의 미래

책장 앞에서 마주한 시간의 역설

서점에서 발견한 묘한 풍경

며칠 전 교보문고를 지나다가 문득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젊은 남성이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온라인 서점의 리뷰 페이지가 떠 있었다. 그는 책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이 책이 정말 읽을 가치가 있을까?” 그의 표정에서 그런 물음이 읽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 책을 선택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뀐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보거나 목차를 훑어보며 직감적으로 판단했다면, 이제는 별점과 리뷰, SNS의 추천과 인플루언서의 의견까지 종합해서 결정한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책들이 과연 우리 곁에 오래 남아있을까? 아니면 읽고 나서 금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릴까? 이런 의문이 들면서, 나는 ‘시간을 이기는 책’과 ‘잊혀지는 책’ 사이의 경계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변화하는 독서 환경의 속살

솔직히 말하면, 나도 요즘 독서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은 여러 권을 동시에 읽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킨들이나 밀리의 서재 같은 전자책 플랫폼 덕분에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책 한 권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진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이런 변화가 더욱 가속화된 것 같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독서량은 증가했지만, 동시에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다른 콘텐츠와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책이 더 이상 유일한 지적 오락거리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과연 어떤 책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단순히 재미있거나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해서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걸까?

고전과 현대서의 묘한 동거

내 책장을 둘러보면 참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10년 전에 산 『데미안』은 여전히 그 자리에 꽂혀 있고, 가끔씩 꺼내 읽어도 새로운 감동을 준다. 반면 작년에 화제가 되어 급하게 산 몇 권의 책들은 한 번 읽고 나서는 거의 손이 가지 않는다.

이게 바로 ‘시간을 이기는 책’과 ‘잊혀지는 책’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시간을 이기는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고, 독자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반면 잊혀지는 책은 한 번의 소비로 끝나는, 말하자면 ‘일회용’ 콘텐츠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잊혀지는 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그 순간에 필요한 위로나 정보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책에 같은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분 자체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거에는 고전으로 여겨졌던 작품들이 지금은 읽히지 않기도 하고, 반대로 당시에는 대중소설로 치부되었던 작품이 지금은 문학사에 한 획을 긋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독서 생태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디지털 시대가 만든 독서의 새로운 지형

알고리즘이 선택해주는 책들

요즘 들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일이 묘하게 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존이나 예스24에 접속하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책’이라는 제목 아래 몇 권의 책들이 나타난다. 처음엔 신기했다. 내가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장르나 작가들과 비슷한 책들이 추천되는 게 꽤 정확했거든.

하지만 몇 달 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추천받은 책들을 계속 읽다 보니, 마치 같은 맛의 음식만 먹는 기분이었다. 심리학 책을 몇 권 샀더니 계속 심리학 관련서만 뜨고, 추리소설 한 권 주문했더니 온통 추리소설 천지가 됐다.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그 취향의 틀 안에 가둬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동네 작은 서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책을 발견했다. 제목도 생소하고 작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펼쳐봤다가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 온라인에서는 절대 추천받지 못했을 책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알고리즘의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함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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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속 책 문화의 변화

인스타그램을 열면 #북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가득한 게시물들이 눈에 띈다. 예쁘게 배치된 책들과 감성적인 문구들. 처음엔 이런 트렌드가 반가웠다. 책 읽기가 다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거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묘한 패턴이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책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비슷한 스타일의 사진들이 올라온다. 마치 ‘인스타용 책’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다. 표지가 예쁘고, 짧은 문구로 요약하기 쉬운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요즘 책을 다 읽지도 않고 사진만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푸념하는 걸 들었다. 과연 그럴까? 아니면 이것도 독서 문화의 한 형태일까? 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책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빠른 소비와 깊은 사색 사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두꺼운 고전 소설을 천천히 읽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자기계발서를 빠르게 넘기며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있다. 같은 ‘독서’라는 행위지만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요즘 들어 ‘빠른 독서법’이나 ‘한 달에 30권 읽기’ 같은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실제로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이런 방법들을 소개하는 영상들이 수십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책을 빠르게 읽는 게 옳은 걸까? 며칠 전 다시 읽은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려본다. 20대에 처음 읽었을 때와 지금 읽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경험들이 텍스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책들은 빠르게 소비할 대상이 아니라, 천천히 음미하며 내 안에서 발효시켜야 할 것들이 아닐까.

결국 디지털 시대의 독서는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편리함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깊이를 찾을 것인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 책들의 비밀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의 공통점

지난 주말, 집 정리를 하다가 대학 시절 읽었던 『죄와 벌』을 다시 꺼내 들었다. 벌써 15년도 넘은 책인데,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라스콜니코프의 내적 갈등이 20대 때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고, 그의 선택들이 왜 그토록 복잡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책들이 시간을 이기고 살아남는 걸까? 매년 수만 권의 책이 출간되는데, 그 중에서 몇십 년, 몇백 년을 버텨내는 책들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서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사랑, 죽음, 정의, 욕망… 이런 주제들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니까.

베스트셀러의 함정과 진짜 가치

요즘 서점 진열대를 보면 ‘화제의 책’, ‘1위 베스트셀러’라는 띠지를 두른 책들이 눈에 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책들에 쉽게 끌린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보증서 같은 느낌을 주니까.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되돌아보면 좀 씁쓸한 생각이 든다.

2년 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어떤 자기계발서가 있었다. SNS에서도 난리였고, 주변 사람들도 너도나도 읽고 있었다. 나도 궁금해서 사서 읽어봤는데, 그때는 꽤 감명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그 책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용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 그 무렵 조용히 읽었던 『사피엔스』는 아직도 가끔 꺼내보게 된다.

이게 바로 베스트셀러의 함정인 것 같다. 순간의 화제성과 장기적인 가치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모두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진짜 좋은 책과 그냥 잘 팔리는 책을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짜 가치 있는 책을 골라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10년 후에도 읽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편이다. 답이 애매하면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확신이 서면 그때 사는 거다.

독자의 성장과 함께 깊어지는 책들

몇 달 전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어린 왕자』를 다시 샀다. 어릴 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걸 왜 또 사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끌리는 게 있었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예쁜 그림이 있는 동화책 정도로 여겼는데, 지금 읽어보니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깨달았다. 정말 좋은 책들은 독자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는 것을. 마치 양파를 까는 것처럼, 읽을 때마다 새로운 층위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여러 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건 아닐까?

요즘 젊은 세대들이 “고전은 어렵다”고 말하는 걸 종종 듣는다. 물론 언어나 배경 지식 면에서 진입 장벽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뛰어넘었을 때 얻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서, 사고의 깊이와 폭이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솔직히 쉽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복잡하고, 철학적인 대화들도 어렵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가면서 느끼는 건, 이 책이 단순히 19세기 러시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윤리적 딜레마들, 가족 간의 갈등, 신앙과 이성 사이의 고민들이 모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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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간을 이기는 책과 잊혀지는 책의 차이는, 얼마나 깊이 있게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독서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

변화하는 독서 환경 속에서 찾은 균형점

얼마 전 동네 작은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3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켜온 곳이었는데, 사장님은 “요즘 사람들은 책을 사러 오지 않아요”라며 아쉬워하셨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킨들로 책을 읽는 사람, 스마트폰 앱으로 웹소설을 보는 학생들을 봤다. 기록되는 책이 역사를 바꾸고, 사라지는 책이 전설을 만든다 독서가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가 바뀐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요즘엔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 읽는다. 출퇴근할 때는 리디북스 앱이 편하고, 집에서는 종이책의 감촉이 좋다. 처음엔 배신감 같은 것도 느꼈는데, 지금은 그냥 도구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무엇으로 읽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게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살아남는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책들은 유튜브나 블로그에 밀려나지만,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을 담은 책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사피엔스』나 『코스모스』 같은 책들이 계속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독서 습관의 진화와 새로운 가능성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독서 패턴을 보면 참 흥미롭다. 내 조카는 웹툰을 보다가 원작 소설을 찾아 읽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 섭렵한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독서 경로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찾아 읽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SNS에서 책 리뷰를 공유하며 독서 모임을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탓에 긴 호흡의 책을 끝까지 읽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본다. 진짜 좋은 책은 어떤 시대에든 독자를 찾아가는 법이니까.

오히려 지금은 책과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진 시대다. 팟캐스트에서 작가 인터뷰를 듣고 책에 관심을 갖게 되거나, 인스타그램의 북스타그램을 통해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시간을 이기는 독서의 조건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책들이 시간을 이길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니 몇 가지 패턴이 보였다. 우선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 메시지로 승화시킨 책들이 오래 사랑받는다. 『미움받을 용기』나 『아몬드』 같은 책들이 그런 예다.

또 하나는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책들이다.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들 말이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감정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성찰은 대체할 수 없을 테니까.

결국 독서의 미래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빠르고 자극적인 것만 찾을 것인가, 아니면 느리지만 깊이 있는 것도 함께 추구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 그래야 책도, 독자도, 그리고 우리의 생각도 더 풍성해질 수 있을 테니까.

책은 변하지 않지만, 책을 읽는 우리는 계속 변해간다—그 변화 속에서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